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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의 최후의 결전決戰낙서장 2026. 2. 12. 08:19
최후의 결전決戰
10월에 유제독劉提督 (유정劉綎)이 다시 두 차례 순천에 있는 왜적의 병영을 공격하고, 통제사 이순신이 수군을 거느리고 왜적의 구원병을 바다 가운데서 크게 쳐부쉈는데, 이순신 은 여기에서 전사하였다.
이 싸움에 왜적의 장수 평행장平行長성을 버리고 도망하였고, 부산釜山·울산蔚山·하동河東의 연해안에 둔쳤던 왜적들도 모두 자기 나라로 물러가 버렸다. 이때 소서행장은 성城을 순천의 예교에 쌓고 굳게 지켰는데, 유정劉綎은 대군을 거느리고 나아가 공격하였으나 불리하여 순천으로 돌아왔다가 얼마 뒤에 다시 나아가 이를 공격하였다.
이순신은 명나라 장수 진린과 함께 바다의 어귀를 눌러 잡고 가까이 쳐들어가니, 왜적의 장수 소서행장은 사천에 있는 왜적의 장수 심안돈오安頓에게 구원을 요구하니, 심안돈오는 군사를 거느리고 수로로부터 와서 구원하였는데, 이순신은 나아가 공격하여 왜적의 배 2백여 척을 불태우고, 왜적을 죽인 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이때 아군은 도망하는 왜적 을 남해의 지경(노량까지 추격하였다.
이순신은 몸소 시석矢石 무릅쓰고 힘을 다하여 싸웠는데, 날아오는 총알이 그의 을 가슴에 맞아 등 뒤로 빠져 나갔다. 이에 좌우에 모시던 사람들이 부축하여 장막 안으로 들어가니 이순신은 말하기를,
「싸움이 바야흐로 급하니, 삼가 내가 죽은 것을 말하지 말라. 하는 말을 마치고 숨을 거두었다.
이순신의 형의 아들 이완은 평소에 담력과 도량이 있는 사람이라, 그는 숙부 이순신의 죽음을 숨기고는 이순신의 명령으로 써 그의 영기를 들고 싸움을 독려함이 더욱 급하니 군중에서 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럴 때 진린陳璘이 탄 배가 왜 적에게 포위를 당하니, 이완은 이를 바라보고는 그 군사를 지휘 하여 그를 구원하였다. 왜적들이 흩어져 달아난 뒤에 진린은 사람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자기를 구원하여 준 것을 사례하였는데, 이때 비로소 그가 전사한 것을 알고 앉아 있던 의자 위로부터 펄 썩 땅바닥에 주저앉으면서 말하기를,
「나는 노야(李舜臣)가 와서 나를 구하여 준 줄로 여겼는데, 어쩌다가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하고는 가슴을 치며 크게 통곡하니, 전 군사들이 다 통곡하여 그 울음소리가 바다 가운데 진동하였다. 왜적의 장수 소서행장은 우리 수군이 추적하여 그 병영을 지나가는 때를 틈타서 뒤로부터 빠져 나와 달아나고 말았다.
이보다 먼저 7월에 왜적의 우두머리인 풍신수길이 이미 죽었었다. 그러므로 바다 연변에 진을 치고 있던 왜적들은 모두 물러 가버렸다.
우리 군사와 명나라 군사들은 이순신이 전사하였다는 말을 듣고 연달아 모든 진영이 통곡하여 마치 자신의 어버이가 세상을 떠 난 것처럼 슬퍼하였고, 그의 영구 행렬이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은 곳곳에서 제사를 베풀고는 영구차를 붙들고 울면서 말하기를, 「공께서는 실로 우리를 살려놓으시더니, 지금 우리를 버려두고 어디로 가십니까? 하며 길을 막아서 영구차가 지나갈 수가 없었고, 길 가는 사람들 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의정부 우의정 議政府右議政 추증하였다. 이때 형군문 邢軍門은 「마땅히 그 사당을 바닷가에 세워 서 그 충혼忠魂을 표창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나, 그 일은 마침내 실행되지 않았다. 이에 있어서 바닷가의 사람들이 서로 모여 사당을 짓고 민충사愍忠祠라 부르며 때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장사 하는 사람들과 어선들이 왕래할 때 그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 들은 저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十月, 劉提督再攻順天賊營,統制使李舜臣,以舟師大敗其救
시월 유제독재공순천적영, 통제사 이순신, 이주사대패기구
兵於海中, 舜臣死之, 將平行長,棄城而遁,釜山・蔚山
병어해중, 순신사지, 행평장 기성이둔 부산. 울산
河東沿海賊屯悉退時行長築城于順天芮橋堅守,劉綎以大
하동연해적둔실퇴 시행장축 성우 순천예교수 유정이 대
兵進攻不利,還順天,既而復進攻之,李舜臣與唐將陳璘,扼
병진공불리 환순천 기이부진공지 이순신여당장 진린액
海口以逼之,行長求援於泗川賊沈安頓吾,頓吾從水路來援,
해구 이지 행장 구원이 사천적 심안돈오 돈오종수로래원'
舜臣進擊大破之,焚賊船二百餘艘,殺獲無算,追至南海界.
순신 진격대파지 분적선이백여소 살획 무산 추지남해게
舜臣親犯矢石力戰,有飛丸中其胸出背後,左右扶入帳中, 舜 臣日,
신순신친범시석역전,유비환중기흉출배후, 좌우부입ㅂ장중,순신왈,
戰方急,慎勿言我死」言訖而,舜臣兄子莞,素有膽 量,
전방급 신물언아사 언글이절 순신형자완 소유담 량
秘其死,以舜臣令督戰急,軍中不知也,陳璘所乘舟爲
비기사 이순신령 독전익급 군중부지야 진린 소승주위
賊所圍,望見揮其兵救之,散去,使人于舜臣, 謝救己,
적소위,원망견위기병구지,적산거,인사인우순신,사구기,
始聞其死,從椅上自投於地曰,「吾意老爺生來救我,何故亡
시문기사 종의 상자 투어지왈 오의 노야생래구아 하고 망
耶?」拊膺大慟,一軍皆哭,聲震海中,行長乘舟師追跡過其
야? 부응대통, 일군 개곡, 성진해중, 행장승주사추적과기
營,自後逸去,先是七月,倭平秀吉已死,故沿海賊屯悉退,
영,자후일거 선시칠월, 왜추평수길이사,고연해적둔실퇴,
我軍與唐軍,聞舜臣死,營慟哭,如哭私親,柩行所至,人民
아군여당군,문순신사,연영통곡,여곡사친,구행소지,인민
處處設祭,挽車而哭曰,「公實生我,今公棄我,何之?」道路
처처설제,만차곡이곡왈, 공실생아, 금공 기아, 하지? 도로
擁塞,車不得進,行路之人,無不揮涕,贈議政府右議政,邢軍
옹색,거부득진, 행로지인, 무불휘체,증의정부우의정, 형군
門謂當立祠海上,以獎忠魂,事竟不行,於是,海邊之人,相率
문위당립사해상 이장 충혼 사경 불행 어시 해변지인 상솔
為禍,號曰愍忠,以時致祭,商賈漁船往來過其下者,人人祭
위사 호왈민충 이시치제, 상고어선왕래과기하자,인인제
2026년2월 12일
추신: 아순신 장군은 1598년 음력 11월 19일로량해전에서 전사하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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