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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라톤 왕초보, 보스톤에서 애국의 길을 묻다
    낙서장 2026. 5. 22. 15:52

    돌이켜보면 참 겁도 없고 뜨거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평생 달리기 경험이 한 번도 없던 제가 1998년 말, 정든 회사를 퇴직한 후 건강을 핑계 삼아 마라톤이라는 거대한 도전에 발을 들였습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 2001년은 제게 기적 같은 해였습니다. 그해 310km 완주를 시작으로 5월에는 하프 코스, 10월에는 마라톤의 꽃인 42.195km 풀코스를 넘어섰고, 급기야 11월에는 63.5km 울트라 마라톤까지 모두 완주해 냈습니다.

     

    그 후 2002년 11월 낯선 땅 스리랑카로 떠나 2년간의 해외 자원봉사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와, 마침내 20094월 세계 최고 권위의 제113회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당당히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저를 끝까지 달리게 한 것은 단순한 개인의 성취감만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독립전쟁의 서막을 기념하는 보스톤 마라톤. 그리고 그곳에서 1947, 우리 선배들이 가슴에 'KOREA'를 달고 당당히 우승하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설움을 씻고 이름을 알렸던 역사. 마라톤이라는 스포츠가 단순한 달릴 거리를 넘어, 누군가에게는 '애국'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그 서러운 역사와 영광의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그 깊은 감동은 귀국 후에도 제 발걸음을 멈추지 않게 했습니다. 손기정, 유관순, 안중근 의사 등 나라를 위해 목숨과 혼을 바친 분들의 뜻을 기리는 마라톤 대회라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그 뜨거운 열정 덕분이었을까요? 그해 20091129, '손기정 기념 평화 마라톤 대회' 32km 부문에 참가했던 저는, 60대 일반부에서 뜻밖에도 '우승'이라는 과분한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제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가장 찬란한 기록이자, 손기정 선수의 정신이 제 다리에 힘을 불어넣어 준 덕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베를린의 월계관, 그 숨겨진 진실을 만나다

    그러던 몇 일 전, 흥미롭고도 가슴 뭉클한 글 한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손기정 선수가 우승했을 때, 머리에 쓰고 부상으로 받았던 기념수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월계수'가 아니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나뭇가지는 바로 북미가 원산지인 '대왕참나무(핀오크)'의 잎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독일 측에서 월계수 대신 잎이 무성하고 아름다운 대왕참나무 가지로 승자의 관을 만들었던 것이지요.

    더욱이 놀라운 것은 그 당시 부상으로 함께 받아와 심은 기념 식수가 지금도 서울 만리동 '손기정 체육공원'에 굳건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야기를 듣자마자 저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곧장 만리동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만리동에서 마주한 대왕참나무, 그리고 가슴 아픈 현실

    손기정 체육공원에 들어서자,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낸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웅장한 자태로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9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땅을 지켜온 '손기정 기념 식수', 대왕참나무였습니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푸른 잎사귀들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1936,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시상대 위에서 고개를 숙여야만 했던 24세 청년 손기정의 아픔과 외로움, 그리고 나라를 되찾고야 말겠다는 굳은 의지가 이 나무의 깊은 뿌리에 그대로 녹아있는 듯했습니다.

    마라톤을 사랑하고, 그 길 위에서 애국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던 한 사람의 러너로서, 나무 앞을 서성이며 손기정 선수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애국심이 다시금 뜨겁게 샘솟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 깊은 감동도 잠시, 제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현실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올림픽이 끝난 지 한 세기가 다 되어가는 오늘날까지도, 국제 올림픽 위원회(IOC)의 공식 기록에는 여전히 손기정 선수의 국적이 '일본(Japan)'으로 표기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나라 없는 설움을 안고 달렸던 영웅의 그림자가 여전히 걷히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마침 그곳에서는 손기정 선수의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올바르게 시정하기 바라는 연명부 작성(서명운동)이 한창 진행 중이었습니다. 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 가슴을 담아 서명지에 제 이름을 꾹꾹 눌러 썼습니다. 70대 노병 러너가 대선배 러너에게 올릴 수 있는 가장 작은 예우이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도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채워가야 할 이름.

    독자 여러분, 손기정 선수는 비록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를 달렸지만, 그가 남긴 발자국과 만리동의 대왕참나무는 오늘날 우리에게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커다란 자부심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되찾아준 나라에서, 우리는 아직 그의 이름 석 자 뒤에 붙은 국적조차 제대로 바꿔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혹시 만리동을 지나실 일이 있다면 꼭 한번 손기정 체육공원에 들러 이 아름다운 대왕참나무를 바라보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웅의 진짜 이름을 찾는 간절한 서명에 손을 보태주십시오. 시대를 번뇌하던 영웅의 숨결과,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푸른 기상이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26년 5월 22일 

     

     

    손기정 월계관 기념수

    1936년 제 11회 베르린 올림픽경기대회의 마라톤종목에서 우승한 선기정 선수를 기념하여 심은 것이다. 원래 올림픽수상자에게 주는 월계관은 지중해 부근 건조지대에서 자라는 월계수(Laurel)의 잎이 달린 가지로만들었으나 독일 베르린 대회에서는 미국이  원산지인 대왕참나무(Quercus Palustris)의 잎이  달린가지로 만들었다고한다.  이나무는 당시 손기정선수가 부상으로  받은 묘목을 그의 모교인  양정고등학교에 심은 것이다. 양정고등학교가 다른 곳으로 옮겨진 우 이곳을 손기정체육공원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은 미국대왕참나무외에도 손기정선수의 흉상이 자원석으로 암담하게 꾸민공간에 놓여있다.

    손기정 월계관 기념식수

    월계관기념나무 확대 사진  

    오오 조선의 남아 여 !

    베르린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심훈 1901~1936소설가)

    그대들의 첩보(捷報)를 전하는 호외뒷등에 붓을 달리는 이손은 형용 못할 감격에 떨린다.

    이역의 하늘아래서 그대들의 심장속에 용솟음치던 피가 23삼백만의 한사람인 내 혈관속을 달리기 때문이다.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소리에 터질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속에 짓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것처럼 화다닥 밝히려하는구나 !

    오늘밤그대들은 꿈속에서 조국의 전승을 전하고자 마라톤 험한길을 달리다가 절명한 아테네 의병사를 만나 보리라 그보다도 더 용감하였던 선조들의 정령(精靈)이 가호하였음에 두용사 서로 껴안고느껴 울었으리라

    오오, 나는 외치고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게의인류를 향해서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1936810일 새벽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낭보가 실린 조선 중앙일보 호외 뒷면에 쓴  심훈의 즉흥시이자 생애  마지막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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