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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의사 순국 109주기 추모식낙서장 2019. 3. 26. 19:39
오늘 남산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서 안중근의사 순국 109주년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참가했습니다. 강당을 꽉메웠고, 특히 눈에 뜨인것은 일본인들도 많이 참석했습니다. 작년에도 일본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보면서 내가 일본사람이면 참석했을까 생각하면서 그들을 다시보게 되고 내자신을 반성도 해봅니다.
우리는 특히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감성에 젖어 사리를 잘판단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내로남불식으로 생각하는 정치 지도자들을 볼때면 존경심커녕 불상해보이기도 합니다. 안중근 순국 109주년 추모식에 참가하면서 안중근의 유묵의 글 국가안위 노심초사, 견리사의 견위수명의 의미를 다시한번 새겨봅니다.
2019년 3월 26일
안중근 의사 약전
大韓國人 安重根 義士는 우리 민족의 위대한 영웅이시며 민족정기의 표상이시다 安重根 義士가 후대에 남긴 위국헌신의 정신과 불멸의 평화사상은 천추에 빛날 것이다
1879.09.02 황해도해주에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성녀(마리아)의 3남1녀중 장남으로 출생(아명 안응칠)
1884 황해도 신천군 청계동으로 이주, 조부의 서당에서 한학을 배우고, 말 타기와 사냥을 즐김
1894년 황해도 지역 동학군에 대항,16세의 나이로 부친을 도와 선봉장으로 활동. 김아려와 결흔, 슬하에 2남 1 녀를 둠
1897 천주교에 입교, 빌렘(홍석구)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서양문호}와 신지식을 익힘
1898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학설립을 구상하여 뭐텔 주교에게 건의
1905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항일독립운동 기지 마련을 위해 중국 상하이 방문
1906 진남포로 이주, 삼흥학교를 설립하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교육구국운동 전개
1907 국채보상운동에 참여 국채보상기성회 관서지부장으로 활동
1908 언해주에서 발간되는 「해조신문」에 「인심결합론」 발표 동의회(총장 :최재형) 평의원으로 참가, 대한의군을 지휘하여 국내 진공작전 전개
1909.02 언해주 연추에서 동지 11 인과 「단지동맹」을 결성, 왼쪽 무명지를 잘라 그 선혈로 〈大韓獨立〉 이라 쓰고 일제에 대한 결사항전 맹세
1909.10.26. 만주 하얼빈 역두에서 한국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여, 한민족의 義氣를 세계 만방에 떨침
1909.11.03. 일제 관동도독부 뤼순감옥에 수감
1909.11.06. 「안응칠소회」 작성
1909.12.13. 자서전 「안응칠역사」 집필 (1910.3.15 탈고)
1910.02.07. 공판시작 재판과정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15개 죄목을 밝히고 한국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의거였음을 당당히 주장하면서 치열한 법정투쟁 전개
1910.02.14. 일제 관동도독부 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음
1910.02. ~ 03. 「동양평화론」 저술, 安 義士의 義氣와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유묵 200여점 남김
1910.03.26. 뤼순감옥에서 만31세의 나이로 순국
1962.03.01.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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