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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순국 107주년 추모식에 참석낙서장 2017. 3. 26. 19:35
옛회사 상사님과 전광복회장님을 모시고 식사를 할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분이 안중근의사가 남긴 유묵중에 이익를 볼때는 의로운가를 생각하고 위험을 볼때는 목숨을 바치라는 견리사의 견위수명을 뜻을 들려주시면서 안중근의사님에 대해 말씀하셨다.
안의사를 더 알아야겠다고 안중근기념관에 와서 안중근아카데미강좌를 수강하고 있다. 백수인 나에게는 수강료가 거금이지만 그래도 수강신청은 잘했다는 생각이다.
3월 26일, 오늘 안중근의사 순국 107주년추모식이 남산 안중근기념관에서 10시에 있다고 했다. 늦지않게 참석하려고 집에서 일찍 출발하여 기념관에 9시반경에 도착했으나 이미 좌석은 거의 만원이 되었다. 가까스로 앉을수가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일본인들도 많았다.
식순은 개회사에 이어 약전봉독( 조동성 부이사장), 최후의 유언낭록(양승국안중근홍보대사), 추모사(안응모이사장), 내빈축사(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유철 광복회장), 추모공연(테나 양광진 소프라노 권성순가수) 열창했고, 감사패수여, 글짓기 대회시상수상자 시상, 헌화 , 안중근의사 추념가 제창, 그리고 페회선언이 있었다.
안중근 약전은 조동성 부이사장이 다음과 같이 고했다.
1879년 9월2일 황해도 해주부 광석동에서 부친 안태훈과 모친 조성녀(마리아)으13남1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시다. 청소년 시절은 신천군 청계동 조부의 서당에서 한학교육을 받으시어 깊은 학문을 이루시고 무예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시다.
1894년 황해도 지역 동학군에 대항 16세의 나이로 부친을 도와 선봉장으로 용맹을 떨치시다. 김홍섭의 따님 김아려와 결혼 슬하에 장녀 현생 (1902) 장남 분도 (1905) 차남 준생 (1907) 등 2남 1녀를 두시다.
1897년 빌렘(홍석구) 신부의 세례로 천주교에 입문하시었고 서구 문명의 신지식 익히시다.
1905년 을사늑약의 소식을 접하신 안중근 일가는 진남포로 이주하시다.
인재양성의 시급성을 아시고 삼흥학교를 설립하시고 돈의학교를 인수하여 육영사업에 헌신하시다.
1907년 항일투쟁을 위하여 러시아로 망명 의군활동을 시작하시다.
1908년 러시아에서 발간되는 한글신문「해조신문」에 인심결합론을 발표하시다. 대한의군을 지휘하여 수차례 진공작전을 결행하시다.
1909년 2월 러시아 언추에서 11인과 “단지동맹” 을 결성하시고, <大. 韓. 獨. 立.>을 피로 쓰시다.
1909년 10월 19일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시어 다음 날 이토의 만주 시찰 계획을 확인하시다.
1909년 10월 26일 아침 7시경 하얼빈 역에서 대기하시다. 오전 9시30분 조선 침탈의 원흉이며 동양평화의 교란자 이토를 하얼빈 역두에서 처단하
는 위업을 이루시고 러시아 헌병에 체포되시다. 당일 저념 일본영사관의 심문을 받으시다.
1909년11월3일 일제 관동도독부 뤼순 감옥에 수감되시고, 1909년 11월 6일 안응칠 소회작성하셨고, 1909.12.13 일 “안응칠역사” 집필을 시작하시다.
1910.2.14 일제 관동도독부 법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으시다.
1910.2.17 사형선고를 받으신 후 200여점의 옥중유묵과 「동양평화론」을 집필하시다.
1910.3.15 “"안응칠 역사”를 탈고하시다.
1910.3.26 뤼|순감옥에서 만30세|의 나이로 순국하시다.
대한국인 안중근 의사는 나라를 위하여 몸 바치는 숭고한 애국정신과 불멸의 동양평화사상 을 우리들에게 남기셨다. 민족정기의 화신이며 장군이시며 교육가이며 사상가이신 안중근의사의 업적은 우리 한민족에게 아시아인에게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영원히 빛날 것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기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안중근 의사의 최후 유언은 안중근 홍보대사인 양승국이 다음과 같이 낭독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옮겨 묻어다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된의무를다하여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당부해 다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추모식에 참석하고 나오면서 안중근의사의 견리사의 견위수명이란 휘호가 새겨진 비를 찾아가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7년전 오늘, 2010년 3월 26일 천암함사건으로 순직하신 군인들과 유가족 여러분들을 위로해주시고 돌봐주시옵소서. 또한 애국과 안보, 순국의 고귀한 정신. 천안함사건을 외면한채 세월호사건을 를 당리당략으로 삼는 정치인들은 이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책임지게 하여주시옵소서.....
2017년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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