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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정신으로 산다는 것낙서장 2025. 10. 23. 05:58
몇 년전 가을 햇살이 유난히 따스한 어느 날, 대전에서 열렸던 효문화 축제의 한 장면이 문득 떠오른다. 그때 나는 그곳행사에 참가하라며 우리 가문의 대종회로부터 ‘문관으로 인증한다’는 인증서를 받았다. 단순한 종이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어떻게 사는 것이 선비다운 삶인가’라는 깊은 물음이 담겨 있었다.
선비란 무엇일까?
옛날 우리 조상들은 나라의 기둥을 문관과 무관으로 나누어 세웠다. 문관은 학문과 도리를 통해 나라의 근본을 다지고,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왕이 그릇된 길로 갈 때, 목숨을 걸고 상소를 올렸고, 옳은 말을 주저하지 않았다. 바로 그 정신이 선비정신(士人精神)이었다.
반면 무관은 나라의 안전과 질서를 지키며,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했다. 두 부류의 길은 달랐지만, 그 뿌리는 같았다 모두 나라와 백성을 향한 ‘충(忠)’과 ‘의(義)’였다.
지금의 세상에는 왕도 없고, 신하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문관’, ‘작은 무관’으로 살아가야 할 책임이 있다. 기업의 경영자든, 교사의 자리든, 혹은 가정의 부모이든, 누구나 정의와 양심으로 세상을 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의 선비정신이 아닐까.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바라볼 때마다 마음이 숙연해진다. 세종은 백성을 사랑한 ‘애민(愛民)의 임금’이었고, 이순신은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진 ‘충의(忠義)의 장군’이었다.
세종의 학문과 도덕, 이순신의 용기와 희생이 어우러져야 나라가 바로 선다. 그 두 분의 정신이야말로 문(文)과 무(武)의 조화, 그리고 선비정신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도 이와 같은 인물을 떠올릴 수 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고, 소년 다윗은 거대한 골리앗 앞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맞섰다.
그들은 권력이나 명예보다 ‘의로움’을 택했다.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용기요, 선비정신의 근원이다. 오늘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는가?
정의는 종종 침묵당하고, 진실은 왜곡된다. 그러나 선비정신은 이런 시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유행이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옳은 길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 그가 바로 오늘의 선비요, 문관의 후예다.
선비정신으로 산다는 것은, 곧 자신의 양심 앞에 정직하고, 타인을 향해 따뜻하며, 공동체를 위해 책임지는 삶을 사는 것이다.
오늘 이 아침, 나는 다시 묻는다. “나는 과연 내 자리에서 선비처럼 살고 있는가?” 답은 거창한 말 속에 있지 않다. 작은 일에서 정직하고, 사람을 대할 때 따뜻하며,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선비정신의 삶일 것이다.
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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