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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현충원을 찾아보며: 꺼지지 않는 한국 마라톤 영웅들의 불꽃낙서장 2025. 12. 4. 10:30
마라톤에 무관심했던 제가 회사 퇴직 후 건강을 핑계 삼아 시작한 조깅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2001년 3월 처음으로 10km 레이스를 완주한 후, 저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릴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그 힘으로 2001년 한 해 동안 10km, 하프(21km), 풀(42.195km)은 물론 울트라 코스(63.5km)까지 모두 완주하는 기적을 만들었고, 2009년에는 꿈의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까지 완주했습니다. 달리기를 통해 얻은 '불굴의 의지' 는 제가 현충원을 찾는 이유이기도합니다.
동작동 현충원, 서윤복 선수의 묘소 앞에서
가끔 동작동 현충원을 찾을 때면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마음으로 대통령 묘소와 함께 박태준 포철회장 묘소도 찾습니다. 그리고 그 바로 앞면에는 한국 마라톤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연 서윤복 선수의 묘소가 있습니다. 서윤복 선수는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2시간 25분 39초라는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한 동양인 최초의 마라톤 영웅입니다. 선두를 달리던 28km 지점, 관중의 개가 코스로 돌진하며 넘어져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끝까지 완주하여 우승을 쟁취했습니다. 그 불굴의 투혼은 묘소 앞에 설 때마다 제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대전 현충원에서 만난 손기정 선수
서윤복 선수의 묘를 볼 때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 선수를 떠올렸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준 자랑스러운 한국인. 2시간 30분대 벽을 최초로 갱신하며 2시간 29분 19초로 우승했던 그 역사의 순간은 언제나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손기정 선수의 묘소를 직접 찾아 뵙고 싶어 검색해보니,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 공헌자 묘역 10번에 안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제, 찬 날씨에도 두꺼운 옷으로 무장하고 대전 현충원을 찾았습니다. 셔틀버스 기사님께 백선엽 장군과 손기정 선수의 묘소를 찾아간다고 말씀드렸더니, 백 장군 묘소 근처에 하차하여 참배한 후 이동하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참배를 하고 대통령 묘역에 가서 최규하 대통령 묘소를 참배한 뒤, 마침내 손기정 선수의 묘소 앞에 섰습니다. 그 옆에는 오재도 검사의 묘소가 함께 있었습니다.
손기정 선수의 묘비 앞에는 심훈 시인이 손 선수와 남승룡 선수에게 보내는 격려의 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오 오, 조선의 남아여!
베를린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남승룡 양군에게... 이겼다는 소리를 들어 보지 못한 우리의 고막은 깊은 밤 전승의 방울 소리에 터질듯 찢어질 듯 침울한 어둠 속에서 짓 눌렸던 고토(故土)의 하늘도 올림픽 거화(炬火)를 켜든 것처럼 화다닥 밝으려 하는구나! 오오 나는 외치고 싶다! 마이크를 쥐고 전세계의 인류를 향해 외치고 싶다! “인제도 인제도 너희들은 우리를 약한 족속이라고 부를 터이냐!”
- 심 훈 -
영광 뒤에 가려진 이름, 남승룡 선수
이 감격적인 글 앞에서 저는 문득 숙연해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우승한 손기정 선수만 기억하지만, 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하여 손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섰던 남승룡 선수의 이름은 무심히 지나치지 않았나 스스로 반성하게 됩니다. 심훈 시인은 두 사람을 동시에 격려하며, 승리의 기쁨과 함께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민족의 저력을 노래했습니다. 대전 현충원에서 만난 두 영웅의 묘소는 단순히 과거의 역사를 넘어, 포기하지 않는 도전 정신과 함께 완주하는 연대의 힘을 제 가슴속에 다시 새겨주었습니다.
이분들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이어받아, 이미 육체적 몸은 망겨졌지만 인생이라는 마라톤 코스를 꿋꿋이 달려나가리라 다짐합니다.
2025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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