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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미동맹은 공짜인가, 트럼프가 묻는다
    스크랩된 좋은글들 2026. 4. 3. 08:15

    일방적 수혜를 보던  호시절은 끝났다   그에게 동맹은 거래 관계   말의 성찬은 필요없다  전략적 모호성 버리고  美가 신뢰할 만한 행동을

     
    2019년 6월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기 평택시 오산 공군기지에서 주한 미군에게 격려 연설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뒤쪽으로 F-16 전투기와 A-10 대지 공격기 등 미군 장비들이 진열돼 있다. /뉴시스
     

    세계 역사에서 국가 간 동맹의 역사는 국가의 역사만큼이나 길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국제 질서에서는 어느 나라도 홀로 자신을 지킬 수 없고, 최강의 강대국도 모든 외부 위협을 홀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약소국은 외세의 위협에서 생존하기 위해 강대국의 보호가 필요했고, 강대국은 세력을 확장하고 도전자의 출현을 억제하기 위해 동맹국들이 필요했다. 이처럼 동맹은 약육강식의 국제 질서가 만들어 낸 불가피한 현실적 필요성의 산물이었다.

     

    역사상 동맹 체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해 세력을 확장한 나라는 공화정 시대의 로마였다. 로마는 도시국가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통일하고 지중해 제국으로 팽창했다. 그 과정은 단일 국가가 아니라 수많은 동맹국, 자치령, 속주 등으로 구성된 동맹 연합체였다. 로마가 이탈리아반도와 시칠리아섬 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에도 직할 영역은 제한적이었고, 북부와 남부의 넓은 지역은 다양한 민족 구성과 정치 체제를 가진 동맹국들의 영토였다.

     

    로마의 동맹국들이 수많은 전쟁과 내전에도 불구하고 동맹 연합체에서 이탈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들에 대한 로마의 처우가 매우 관대했기 때문이었다. 로마는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패전국에 고액의 배상금이나 영토 할양을 요구하지 않았다. 패전국들은 통치권을 그대로 유지했고 로마에 세금을 낼 필요도 없었다. 로마가 패전국에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로마와의 동맹조약 체결이었다. 그들은 로마가 전쟁에 직면할 때 병력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을 뿐이며, 그 대가로 로마는 동맹국이 외침을 받으면 즉각 군대를 파견해 보호했다. 이런 상호주의적 동맹 구조는 로마가 팽창을 지속해 나간 핵심 원동력이었다.

     

    이 상호주의적 동맹 개념은 냉전 시대 미국이 주도한 자유민주진영에서 현대적으로 재현되었다. 미국은 압도적 힘을 가진 패권국이었지만 다른 강대국과 달리 동맹국의 주권을 위협하거나 영토와 이권을 탐하지 않았으며, 동맹국들에 막대한 무상 원조와 군사적 보호를 제공했다. 한국은 그 대표적 사례였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한국에 연인원 180만의 미군 병력을 투입했고 3만7000명이 전사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막대한 무상 경제·군사 원조를 20여 년간 지속했고, 현재도 2만8500명의 미군이 한국 안보를 위해 주둔 중이다.

     

    미국은 세계 약 60국에 다양한 병력을 파견하고 있지만, 특정국의 방어를 위해 1만명 이상의 미군이 수십 년 상주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일본과 독일 주둔 미군은 규모가 더 크지만, 이들은 유럽과 동아시아 전체를 방어하는 지역 방위군 성격의 병력이다. 물론 미국이 그간 한국의 안보와 경제 발전을 지원해 온 것은 그것이 미국의 가치관과 전략적 이익에도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을 비용과 이익을 따지는 거래 관계로 재정의하고 있어, 동맹의 미래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오늘날 한국은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면서도 정치·경제적으로 중국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는 이중 구조에 놓여 있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미국 우선주의 경향이 강화되면서 이런 구조는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그 적국들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에 안주한다면 동맹의 신뢰 기반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의 대외 전략이 중국과 이란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기대가 확대되고 있지만, 한국의 대응은 극히 신중하고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은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에 개입되기를 거부하고 있고, 최근 동중국해에서의 한·미·일 공군 연합 훈련에 불참했고,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청에도 불응했다.

     

    현실 국제정치에서 동맹관계는 국가 간의 상호주의적 거래이며, 결코 공짜가 아니다. 신냉전과 미국 우선주의의 험악한 국제질서 속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한국은 지난 70여 년간 한미동맹의 일방적 수혜를 누려왔지만, 이제 그런 호시절은 갔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과거의 기억에 젖어 동맹조약 상의 상호주의적 의무도 도의적 협력도 외면한다면, 원자력잠수함 건조도, 원자력협정 개정도, 미국의 북핵 억지력 제공도, 나아가 한반도 유사시 대규모 미군 파병도 기약하기 어려운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 지금 한국 외교에 필요한 것은 모호한 말의 성찬이 아니라 신뢰할 만한 구체적 행동이다.

     

    2026년 4월 3일 조선일보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前 외교부 북핵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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