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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수복 때 중앙청에 제일먼저 태극기를 게양한 일화낙서장 2015. 9. 25. 16:57
서울수복 때 중앙청에 제일먼저 태극기를 게양한 일화
몇일안있으면 9월 27일 추석이 있고 바로 다음날은 928 서울 수복기념일이다. 오늘 청계광장으로 자원봉사를 가던중 시청 앞 서울 수복 참전용사 사진전이 있었다. 서울 수복은 1950년 625 사변으로 인하여 서울을 북괴에게 내주었던 것을 맥어더장군이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후 서울 수복전투를 계획하여 18일에 시작하여 부터 마침내 9월 28일 서울 수복시킨 전투였다.
서울수복 후 중앙청에 누가 제일먼저 태극기를 게양했을가? 호기심에 검색하여 내용을 올려놓는다.
9월 26일 서울에 입성한후 맥아더 장군은 서울 탄환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것은 반정도 탄환했다. 한편 조선호텔에 본부를 둔 한국 해병대 제2대대는 대대장 김종기 소령이 중대장과 소대장들을 불러놓고 다음날 작전계획을 설명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박성환 종군기자가 "중앙청은 미해병대 제5연대의 목표이나 우리 동포의 손으로 태극기를 올려야한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분부가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박정모 예비역 대령은 태극기는 내가 꽃아야하겠다는결심을 하고 곧바로 대대장에게 자기의 뜻을 전하고 중앙청 돌진허가를 상신하였다. 대대장은 신현준 연대장의 승인을 얻은 다음에 박소위를 격려하였다. 박소위는 9월 27일 새벽 3시경, 호텔 보이를 시켜 구해놓은 대형 태극기를 몸에 감고 소대를 진두지휘, 중앙정으로 접근하였다. 세종로 일대에는 군데군데 북한군이 구축해 놓은 진지로부터 간헐적으로 총탄이 날아왔으나 수류탄 공격으로 수개의 진지를 격파하고 2시간 만에 연기가 자욱한 중앙청에 도착하였다.
우선 청내의 잔적을 소탕, 제압한 다음, 2개 분대를 중앙 돔입구에 배치하고, 1개 분대를 근접 호위케 하여 2m길이의 깃봉을 든 최국방 견습수병과 양병수 이등병조를 대동하고 돔 계단으로 올라갔다.
철제 사다리는 폭격으로 절단되었고, 끊어진 와이어 로프 일부를 사용, 꼭대기로 기어오르다 떨어져 부상을 당할 뻔하였다. 부득이 호위 분대원들의 허리띠를 모두 회수하여 연결한 다음 천정에 매달고서 천신만고 끝에 돔창문까지 접근한 다음 태극기를 봉에 달아 창밖으로 비스듬히 내걸고 고정시켰다. 이 때가 9월 27일 새벽 6시 10분이었다. 서울이 북한군에게 점령당한 지 꼭 89일 만에 다시 중앙청에 태극기가 새벽의 포연 속에 휘날리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양병수 이등병은 이 공로로 미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우리는 과거를 잘 잊지만 중요한 내용은 기억하여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데 기여해야겠지요~~
2015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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