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된 좋은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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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 다한 운동권 잔당의 '親日 타도' 최후 항전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22. 10:17
김창균 논설주간제79주년 광복절인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광복회가 주최한 8.15 광복절 기념식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앞줄 왼쪽) 등 참석자들이 광복절 노래를 부르고 있다.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역사관을 둘러싼 갈등이 봉합되지 않으면서 광복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연합은 이날 자체 광복절 기념식을 열었다. 광복회의 광복절 기념식 불참은 1965년 창립 이후 처음이다. /뉴스1 1950년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중학교 3학년 박현채는 빨치산에 투신했다가 2년 만에 하산했다. “민중을 위한 학문을 하라”는 부대장 당부에 따라 서울대에 진학해 경제학을 공부했다. 박씨의 빨치산 체험은 중학교 후배 소설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소년 전사 조원제’ 활약상에 담겼다. 1980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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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발의 실탄을 남긴 뜻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22. 09:51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고향을 떠났던 안중근은 헐벗고 굶주린데다가 어머니가 보고 싶어 어느 추운 겨울 날 고향으로 향했다.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 캄캄한 밤을 택하여 겨우 집에 도착한 안중근은 어머니가 기거하는 방 앞으로 가서 조용히 불렀다.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갑게 맞아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머니의 반응은 전연 뜻밖이었다. 방안에서 어머니의 냉냉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 아들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러 나가고 없다. 내 아들이 아직 큰일을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데 누가 와서 나를 부른단 말이냐?” 안중근은 서럽고 기가 막혔다. 그러나 다음 순간 크게 깨달았다. ‘그렇다 어머니의 말씀대로 대장부가 뜻을 세웠다면 큰일을 할 때까지는 모든 것을 잊고 전념해야한다. ’ 안중근은 다시 그 밤길에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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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표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일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21. 07:28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이재명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뉴스1 민주당 이재명 대표 체제 3기가 시작됐다. 1기는 대선 후보 선출로 출발해 대장동 비리와 대선 패배로 막을 내렸다. 2기는 당 장악과 총선 승리라는 반전 드라마였다. 3기는 사법 리스크를 넘어 중도화 전략을 통해 대선 승리로 마무리 짓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초유의 85% 득표율로 독주 체제를 완성했으니 기대할 만한 시나리오다. 하지만 이 대표 주변에선 걱정이 많다. 두 달 뒤 이 대표를 흔들 태풍 3개가 동시에 다가오고 있다. 먼저 선거법과 위증교사 1심 선고가 10월 중 예정돼 있다. 두 사건 모두 단순·명확하고 증거나 증인도 있다. 둘 중 하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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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인터뷰 "이종찬 그분 정말 이해 안 돼 … 1919년 건국했으면 독립운동 왜 했나"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19. 23:17
"1936년생 이종찬 광복회장, 출생 당시 어느 나라 호적 받았나""독립기념관장은 독립운동가 후손만 해야 한다는 전제 잘못""뉴라이트로 규정하고 사퇴 요구하는 게 새로운 블랙리스트""1919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주장은 역사왜곡""대한민국 토대 허물기 위한 종북 좌파의 작전은 현재진행형"▲ 역사학자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 대사·KBS 이사장)가 13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뉴데일리와 인터뷰하고 있다. ⓒ조문정 기자 "이종찬 광복회장은 저와 같은 해인 1936년에 태어나셨습니다. 당시 출생 신고를 하셨습니까? 어느 나라 국민으로서 호적을 받게 되셨습니까?" 역사학자인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러시아 대사·KBS 이사장)는 13일 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이종찬 광복회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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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세운 나라인데 광복절에 이 소동을 벌이는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17. 07:57
제헌국회의 국회의장인 이승만 박사가, 1948년 7월 17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 역사에서 최초로 헌법에 의한 통치라는 민주공화정의 이념을 기초로 한 제헌 헌법에 서명한 후, 국회에서 기념 연설하는 모습. /조선일보 DB 광복절(光復節) 속 ‘광복’은 ‘잃었던 나라를 되찾다’라는 뜻이다.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본 식민 지배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났다. 그 첫 선물은 일본식(日本式) 이름을 버리고 우리 본래의 성(姓)과 이름을 되찾게 된 것이다. 총독 미나미(南次郎)는 1939년 조선인은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도록 했다. 이름을 고치지 않으면 자녀의 학교 진학·취직은 물론 생필품 배급 중단과 우편물까지 배달하지 못하게 하는 강제 수단을 동원했다. 1941년 말 전체 가구(家口)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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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국회는 왜 헌법에 臨政을 명기하지 않았나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16. 16:24
분수령은 1948년 5·10 총선거 김구가 소련 지지로 돌아서고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하면서임정은 몰락했다. 한국 민족주의의 정치적 오류는 독립과 건국 사이의 단절 자유와 민주의 가치로 거듭날 때대한민국은 문명국가 될 것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1948년 5월 31일 열린 제헌의회 개원식. /조선일보 DB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심훈) 해방은 도둑같이 찾아왔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념 대립으로 좌우가 갈리고 남북이 찢겼다. 결국 6·25전쟁이 일어나 동족의 피로 대지를 적셨다. 79년이 지난 올 광복절 기념식도 두 쪽이 났다. 신임 독립기념관장 인사를 둘러싼 정부와 광복회의 불화 때문이다. 이종찬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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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부르면 친일파라는 황당한 기준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15. 07:14
광복회는 “일본 주장대로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지식인이나 단체’를 ‘뉴라이트’로 규정하면서 ‘뉴라이트 판별법’ 9가지를 제시했다. ‘뉴라이트’를 ‘친일파’로 몰아가기 위한 것이다. 9가지가 모두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특히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한다’는 판별 기준은 황당하기까지 한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승만 건국 대통령’을 주장하거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두 ‘친일파’가 되는 셈이다. 광복회와 이종찬 회장은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 시점으로 보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의 초대 대통령이기도 하다. 건국 시점을 1919년으로 보든, 1948년으로 보든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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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한국 망친 역적을 쐈다"… 의거 후 첫 신문 기록 공개스크랩된 좋은글들 2024. 8. 15. 07:07
안중근 의사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직후 안중근(1879~1910) 의사를 최초로 신문한 일본인 외교관의 친필 기록이 발견됐다. 국내 컬렉터인 최영호 82갤러리 대표는 “지난 3월 일본 경매에 나온 오노 모리에(大野守衛) 친필 원고와 사진 7점 등 일괄 자료를 구입했다”고 밝혔다. 당시 중국 랴오닝성 잉커우(營口)에서 영사관보로 근무한 오노 모리에는 1910년 3월 원고지에 친필로 쓴 기록 14장과 의거 ‘몇 분 전 촬영한 하얼빈역’ 사진 등을 남겼다. 안 의사는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의거 직후 러시아 영사관으로 압송돼 밀레르 검사가 신문했고, 이날 오후 10시쯤 안 의사의 신병과 취조 기록 원본을 일본 하얼빈 총영사관으로 넘겼다. 당시 가와카미 도시히코(川上俊彦) 하얼빈 총영사도..